경남 진주시의 어느 골목길에서 6, 70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2층의 슬리브 벽돌집을 만났다. 사람이 사는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만 첫눈에 '전문 건축가의 손을 거치면 물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1층집은 오른쪽으로 대문이 있었으나 2층은 대문도 없이, 도로에서 계단을 통해 층으로 바로 올라가도록 지어졌다.그 시절에는 2층을 전세방으로 내놓으려면 세입자가 집주인과 부딪치지 않도록 출입문을 따로 만들었는데, 이 집은 작은 면적이라서 2층으로 올라가는 대문을 만들 수 없었기에 도로에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곧장 올라갈 수 있도록 지
엊그제, 사천시 벌리동 시외버스 터미널 뒤 구도심 골목길을 걷다가 달셋방을 내놨다는 안내장이 대문간에 붙어있는 모습에 발걸음이 멈춰졌다. 시골에서 도시로 나와 자취생활을 했기에 낯설지 않았고, 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 총 20여 년을 곁방살이했으니 참 질기고도 아린 기억의 안내장이다.요즘의 자취생은 웬만하면 원룸 정도여야 하고, 신혼집도 아파트가 기본이라는데 이런 일반주택의 재래식 달셋방을 찾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이완용 기자
손주와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 갔다가 우연히 놀이기구 안쪽에서 발견한 글귀다. 글 쓴 아이는 장난삼아 낙서했겠지만, 보는 어른으로서는 마음 한구석이 징하다.초등학생 정도라면 마음껏 뛰어노는 것도 필요한데, 엄마가 얼마나 '안된다, 하지 마라. 이래라저래라'하며 틀에 넣어 키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경남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 구암 이정 선생의 묘소에 있던 향로석입니다. 2014년 8월 24일에서 2015년 1월 17일 사이에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향로석은 제단보다 높게 만들어진 특징이 있는데, 이런 향로석은 찾아보기 드물어 보존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지금은 문화재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재현품을 설치했는데 처음 만들어진 이 향로석이 꼭 제자리에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구암 선생은 사천읍 구암마을에서 태어나 과거에 장원급제했고, 조선 중기 홍문관 부제학, 경주·순천 부윤 등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구계서원에 봉안돼 있습니다.